"법률적 이해관계로 얽힌 김씨와 이씨의 오랜 악연은
노회한 박변호사의 중재를 통해 끊어졌다"
위 문장에서 "노회한"이라는 말의 뜻을 아는 학생들이 많지 않습니다. "이해관계"를 "서로 이해하는 관계"로 잘못 받아들이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글의 맥락을 통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안좋았던 관계가 변호사를 통해 좋아졌다."
이런 식으로 학생들은 실제로는 모르지만, 안다고 착각합니다.
그런데 지문에서의 위 문장을 바탕으로 출제한 문제에서 다음과 같은 선지가 나오면 어떨까요?
- 김씨와 이씨는 오래된 사이라 이해관계가 매우 깊다.
- 박변호사는 강직하고 정직한 태도를 가진 나이 많은 변호사로서 직업적 사명감이 높은 사람이다.
학생들은 오답을 내거나, 고민하느라 시험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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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츠 영상과 SNS 단문이 소통의 중심이 된 시대와 어휘력의 부족은 필연적 관계 |
수능 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어휘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정작 어휘 공부를 잘 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휘 부족을 인식하지 못함
학생들은 자신이 어휘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모르는 단어가 지문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적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 지문에서 2~3개의 단어만 몰라도 전체 맥락을 통해 의미를 유추할 수 있으니, 어휘가 부족하다는 자각 없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휘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면 문장의 논리 구조를 파악하는 데 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어휘 공부의 즉각적인 효과가 보이지 않음
어휘 공부는 장기적인 투자에 가깝습니다. 수학처럼 개념 하나를 익히면 바로 문제 풀이에 적용할 수 있는 과목이 아닙니다. 학생들은 빠른 성과를 원하지만, 어휘는 하루 이틀 공부한다고 점수가 즉각적으로 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는 문제 풀이 위주의 공부에 집중하고, 어휘 공부는 뒤로 미루게 됩니다.
체계적인 어휘 공부법을 모름
어휘를 암기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히 국어 사전을 보면서 단어를 외우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지루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재에서 제시하는 필수 어휘 목록을 단순 암기하는 것도 흥미가 떨어지는 일입니다. 문맥 속에서 어휘를 익히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를 실천할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과목에 비해 우선순위가 낮음
국어보다는 수학, 영어, 탐구 과목이 점수 상승이 눈에 보이는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특히, 국어는 감으로 푸는 과목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있어, 개념 학습이나 어휘 공부보다는 문제 풀이 연습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수능 국어에서 고난도 문제는 대부분 어휘력과 개념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풀기 어렵습니다.
어휘력은 국어의 기초 피지컬 능력입니다. 기초 피지컬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성적 향상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어휘력을 키우기 위해 영어처럼 단어책을 꾸준히 공부하는 것은 다른 과목들을 함께 공부해야 하는 현실에서 쉽지 않으며, 장기 기억과 흥미라는 요소가 포함되면 그 효과 측면에서도 부정적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순한 암기가 아니라 실제 국어 공부 과정과 연계하여 자연스럽게 어휘력을 키우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어휘 공부는 지문을 공부할 때 모르는 단어를 따로 정리하여, 문맥 속에서 예문과 함께 뜻을 파악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평소 국어의 문학, 독서 지문을 공부한 후, 복습하는 과정에서 모르는 어휘를 표시한 후 사전을 찾아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가장 좋은 국어 어휘 공부법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공부법을 실천하는 학생은 극히 드뭅니다.
1년에 300여명의 수험생을 가르치는 학원 선생님이 3월 첫수업에서부터 이 방법을 강조하더라도 11월 수능 시험일까지 꾸준히 이 방법을 실천하는 학생은 3명이 안된다고 합니다. 1% 이하의 비율입니다.
학원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어휘 공부를 시키는 것은 학원 선생님도, 학생도, 학부모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선 사례에서 보듯이 학생 스스로 하는 것도 기대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결국 학부모가 도와줘야 합니다. 학생 스스로 안한다면, 학생이 어휘 공부를 꾸준히 하도록 학부모가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학생이 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면, 공부 교재에 나온 어휘의 뜻을 학생에게 물어보는 정도로도 충분합니다. 기출 공부방에서 다운받은 어휘 자료를 꾸준히 공부할 수 있도록 한다면 더욱 좋고요.
어휘는 생각을 담는 그릇입니다. 어휘력이 늘어나면 사고력도 함께 발전합니다. 꼭 국어 시험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갖춰야 할 중요한 능력입니다. 자녀에게 좋은 음식과 약을 챙겨주는 것이 사랑의 표현이듯, 어른들이 만든 쇼츠 영상과 SNS 단문이 소통의 중심이 된 시대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어휘력 또한 부모님이 신경 써줘야 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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